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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서 혈압약을 받아가시는 분들 중에, 약은 꾸준히 챙겨 드시는데도 혈압이 잘 안 잡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식습관도 여쭤보고 운동도 여쭤보지만, 가만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요즘 집에 큰소리 날 일이 많다"거나 "회사에서 누구 때문에 매일 열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약으로만 다스리기엔 한계가 있는 혈압도 있다는 걸, 그럴 때마다 다시 느낍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말씀은 잠언 15장 1절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 15:1)

 

이 한 구절 안에 사실 꽤 정확한 생리학이 들어 있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날 선 말을 주고받으면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혈압과 맥박이 함께 올라갑니다. 반대로 한 사람이라도 유순하게 대답하면 그 상황 자체가 가라앉고, 몸도 따라서 가라앉습니다.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혈압뿐 아니라 제 혈압도 바꾸는 셈입니다.

 

성경 야고보서도 이 지혜를 다른 각도에서 짚어줍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 야고보서 1:19

 

듣기는 빠르게, 말하기는 천천히. 이 순서를 바꾸기만 해도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말부터 먼저 뱉어버리면 교감신경이 먼저 반응하고 나서야 이성이 뒤늦게 따라오지만, 한 박자 듣고 나서 말하면 그 사이에 몸이 한 번 가라앉을 틈이 생기거든요.

 

약국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혈압 관리를 잘하시는 분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화가 날 상황에서 바로 받아치지 않고, "일단 한 박자 쉬고 말한다"는 자신만의 습관을 갖고 계신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숫자를 세신다고 하고, 어떤 분은 그 자리를 잠깐 벗어난다고 하십니다. 잠언이 말하는 '유순한 대답'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이렇게 훈련할 수 있는 습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약국 카운터에서도 이 원리를 자주 씁니다. 약값을 설명하다가 언성이 높아지시는 분들께는 먼저 "네, 그러셨군요" 한마디를 건네고 잠깐 멈춥니다. 그 몇 초 동안 상대방의 호흡도, 제 호흡도 한 번 가라앉거든요. 그다음에 설명을 이어가면 신기하게도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약으로 혈압을 낮추는 것처럼, 말 한마디를 고르는 그 몇 초도 분명히 효과가 있는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참으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말로 대답할지는 늘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이 생각보다 더 직접적으로 몸에 영향을 준다는 것, 이것이 오늘 말씀이 주는 실천적인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 지혜서의 명언과 생각

「혈기 있게 말하는 자는 찌르는 칼 같아도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잠언 12:18)

말이 '양약'이 될 수도, 칼이 될 수도 있다는 이 비유가 약사인 저에게는 유독 와닿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게으름과 부지런함'을 주제로, 개미에게 배우는 생활 리듬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